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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 후기 │ 질문을 던지는 무대, 정의와 진실 사이에서

by 리포터장 2026. 1. 3.

타지마할의 근위병 포스터
타지마할의 근위병 포스터

2025년 12월, LG아트센터에서 타지마할의 근위병 연극 한편을 봤습니다.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단 두 명의 배우만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밀도 높은 심리극이자,
역사 속 진실과 인간의 윤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2025년, 재공연된 이 작품은 초연 당시보다 더 깊이 있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의 사고를 흔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공연의 전반적인 구성과 주제 의식, 인상 깊었던 장면, 그리고 관람 후 느낀 점들을 공유해보려 합니다.


줄거리 요약 – 타지마할 뒤편에서 벌어진 진실 찾기

배경은 인도의 유명한 유적지인 ‘타지마할’.
연극은 이 상징적인 장소를 지키는 두 근위병 바불후마윤의 대화를 통해 전개됩니다.
두 사람은 초반에는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타지마할의 분실된 오브제에 대해 의심하고 추궁하면서 극의 분위기는 점점 심리적 긴장감과 도덕적 갈등으로 치닫습니다.

관객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단순한 유물 도난 사건 그 이상으로 확장되는 국가, 신념, 권력, 진실, 인간성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극의 핵심 –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단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묻는 연극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오히려 "우리가 믿는 진실은 과연 진짜인가?", 그리고 "정의란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등장인물 바브르는 체제에 순응하며 명령을 따르는 인물이고, 후마윤은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며 ‘믿음’보다 ‘이성’을 선택하는 인물입니다.
이 두 인물의 대립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닌, 신념과 윤리의 본질에 대한 충돌입니다.
관객은 어느 쪽이 맞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고,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도록 이끄는 구조가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무대와 연출 – 최소한의 공간, 최대한의 몰입

이 연극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무대 그 자체입니다.
단출한 무대, 두 명의 배우, 그리고 몇 개의 소품만으로 구성된 공간에서 관객은 오히려 더 높은 몰입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벽돌로 표현된 타지마할 뒤편의 구조물, 제한된 조명, 섬세한 음향 효과는 배우들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대사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특히 장면 전환 없이 이어지는 대화 중심의 구성은 마치 한 편의 시나리오를 실시간으로 읽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 대사 이상의 감정을 전달하다

제가 관람한 회차에서는 휴마윤 역 배우(최재림)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단어 하나, 표정 하나, 정적인 움직임조차도 모두 감정이 실려 있었고 "의심하라, 그리고 생각하라"는 그의 대사는 공연 내내 강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바불 역 배우(박은석) 역시 캐릭터의 복합적인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체제를 의심하지 않으려는 두려움, 상처, 혼란, 분노 등이 복잡하게 얽힌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해’하게 만들고, 결국엔 ‘동정’하게 만들었습니다. 두 배우 모두 극 후반으로 갈수록 감정의 진폭을 정교하게 조절해가며, 관객의 감정까지 함께 움직이게 했습니다.


관람 후 느낀 점 – 정답 없는 이야기, 그러나 분명한 질문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끝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습니다.
두 인물의 대화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듯하다가 다시 어긋나고,
결국 관객은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열린 결말 앞에 놓이게 됩니다.

그 불편함은 곧 생각의 출발점이 됩니다.
‘정의는 누구의 시선으로 결정되는가?’,
‘의심은 죄인가, 아니면 인간의 본능인가?’
공연장을 나서는 길에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저 또한 제 일상에서 무언가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현실과 맞닿은 무대, 오래 남는 질문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강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무대 위의 갈등이 단지 과거의 이야기나 타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권력,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은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사회 속 모습과도 겹쳐 보였습니다.
단 두 명의 인물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오히려 대사에만 집중되는 구조라 더 큰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생각할 거리뿐만 아니라, 말할 거리까지 남겨주는 작품이라 관람 이후 지인들과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시의성과 작품성이 동시에 갖춰진 연극이기에, 시즌이 바뀌어 다시 공연된다면 꼭 다시 관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다른 배우들의 해석도 궁금해질 정도로 여운이 짙게 남는 연극이었습니다.


마무리 감상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은 요란한 장치나 극적인 반전 없이도,
단지 두 인물의 팽팽한 대화만으로도 관객을 완전히 몰입시키는 힘을 가진 작품입니다.
동양과 서양, 종교와 이성, 권위와 진실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공연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정답을 주지 않는 무대이기에 더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연극.
생각할 거리와 말할 거리를 함께 안고 나오게 되는 진짜 ‘연극다운 연극’이었습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은 작품을 찾는 분들께 꼭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본 후기는 2026년 공연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회차에 따라 배우, 연출, 감상 포인트는 다소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