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레드북》은 "여성", "글쓰기", "자기표현"이라는 주제를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 창작 뮤지컬입니다.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외침을, 위트와 감동을 버무려 진심 있게 전하는 작품이죠.
이번 후기는 《레드북》의 줄거리, 무대 구성,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관람 후 느낀 여운을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가진 여성, 안나를 만나다
주인공 안나(옥주현)는 자신의 욕망과 생각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하는 여성 작가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여성의 목소리를 음란하다고 치부하며 배척했고, 안나는 늘 편견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변호사 지망생 브라운(지현우)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충돌과 대화를 거치며 서로를 이해해 갑니다.
안나는 “남들 눈에 비정상적이라도 내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겠다”는 용기로, 결국 자신만의 목소리를 지닌 작가로 거듭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여성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대를 가득 채우는 위트와 섬세함
《레드북》은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 대사와 장면 연출이 돋보이죠.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안나가 자신의 글을 낭독하며 관객과 직접 교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무대는 마치 현실과 연결된 창처럼 느껴졌고, 관객의 웃음과 공감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공연의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의상과 소품은 19세기 영국의 정취를 살리되, 과하게 고전적이지 않아 현대적인 감각도 느껴졌습니다.
조명은 인물의 심리 변화와 서사의 전환점을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표현해 주었고,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감각적인 무대였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그 안의 진심
제가 관람한 회차의 안나 역 배우(옥주현)는 강단 있는 여성 캐릭터의 복합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주었습니다. 당차고 유쾌한 모습부터 상처받고 흔들리는 순간까지, 안나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전달해 주었고, 특히 넘버에서 드러나는 감정선이 탁월했습니다.
브라운 역 배우(지현우) 또한 극 초반의 고지식한 모습에서 점차 시야가 넓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주변 조연 캐릭터들도 모두 살아 있었고, 각자의 유머와 개성이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캐릭터 간 케미스트리가 뛰어나, 공연 내내 무대 위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넘버와 대사
《레드북》의 넘버는 단순히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를 넘어, 인물의 신념과 변화, 메시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 🎵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
안나가 자신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외치는 이 곡은, 공연의 핵심 메시지를 응축한 장면입니다. 감정의 폭발과 함께 관객의 심장에도 울림을 남깁니다. - 🎵 〈괜찮은 어른〉
브라운이 자기 모순을 돌아보는 넘버로,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현실적인 고민을 담고 있어 관객의 공감을 자극합니다.
이외에도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라는 대사처럼, 작은 문장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어 공연 후에도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더 필요한 이야기
《레드북》은 단순히 ‘페미니즘’이나 ‘여성 서사’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누구든, 자신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편하게 보일지라도, 누군가에겐 그 표현이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식일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강하게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 뮤지컬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을 이해받고 싶은 사람, 혹은 누군가를 이해해 보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공연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감상
저는 옥주현 배우와 지현우 배우의 캐스팅 공연을 봤습니다. 당시에 교통 체증으로 조금 늦게 입장하여 극 초반을 보지 못했지만, 내용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 따라가는데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뮤지컬의 매력은 넘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넘버가 끝난 이후에도 귀에 익을 만큼 익숙한 멜로디와 쉬운 가사로 이뤄져 있어,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들으며 당시를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뮤지컬 《레드북》은 짧지 않은 공연 시간 내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는 작품입니다.
익숙한 무대 구성이나 화려한 장치 없이도,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감각적인 넘버, 그리고 배우들의 호흡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
가벼운 웃음에서 시작해 묵직한 울림으로 끝나는 이 여정은, 단지 한 여성의 성장 서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연장을 나서는 그 순간, 우리 모두가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작품이 남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에도 《레드북》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극장에서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고도 묵직했던 이유는, 이 작품이 단지 ‘재미있는 공연’이 아닌, 내 삶에 대해 한 번 더 질문하게 만든 공연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솔직하게 살고 있지?”,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가?”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공연을 보는 내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감각이 들었습니다.
《레드북》은 사회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위로를 건넵니다.
단순히 여성의 권리나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시대와 성별, 나이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공연을 본 그날뿐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도 작은 울림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 본 후기는 실제 공연 관람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감상은 개인적인 의견이며, 회차별 캐스트 및 연출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