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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리뷰|어둠 속에서 피어난 인간의 빛

by 리포터장 2026. 1. 24.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포스터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포스터

공연장을 나오는 순간, 나는 무언가에 부딪힌 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감동이나 여운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복잡하고 깊은 감정이었다.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시각 중심의 세계를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고도 세상을 마주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공연을 보는 내내 내가 무대 위에 무엇을 ‘보고’ 있는지보다,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따라가게 되었다. 이 작품은 ‘시각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코 그들의 결핍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간 본연의 욕망, 충돌, 성장, 그리고 고유한 감각의 세계를 정교하게 풀어낸다. 이 뮤지컬은 한 편의 철학적 드라마이자, 인간이 무엇을 보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 작품이었다.

시각을 잃었지만, 감정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스페인 작가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시각장애 청소년들이 모여 생활하는 기숙학교다. 새로 이곳에 입소한 이그나시오는 밝고 외향적이며, 세상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마냥 평화롭고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기존의 틀을 깨고자 행동한다. 반면, 이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카를로스는 질서를 중시하며,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려 애쓴다. 두 인물은 처음엔 친구로 시작하지만, 점점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게 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들의 대립이 단순한 감정 싸움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안정을 찾고, 누군가는 질문하고 저항한다.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보이는 세상’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이 작품은 시각의 유무를 넘어, 인간이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하는지를 탐색한다.

무대 연출 – 감각을 확장하는 정적이고도 깊은 설계

이 뮤지컬에서 무대는 아주 단순하다. 기숙학교라는 설정에 맞춰 벤치, 책상, 침대 등이 중심이 되고, 세트 변화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단조로운 공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대가 인물의 심리를 따라 정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조명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각장애라는 설정상, 인물들이 직접 무언가를 ‘보는’ 장면은 없지만, 오히려 조명으로 그들이 감정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관객에게 전달한다. 특히 이그나시오가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장면에서는 붉은 톤의 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우며 내면의 혼란과 분노를 시각화하고, 반대로 침묵이나 절망이 드리우는 순간에는 어두운 조도와 정적인 무대 구성으로 감정의 낙차를 보여준다. 배우들의 동선 역시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어, 관객은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인지할 수 있다. 소리의 활용 또한 주목할 만하다. 문이 닫히는 소리, 발걸음, 작은 숨소리 등 세세한 음향이 시각적 정보의 빈자리를 메우며 오히려 더 풍부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넘버와 음악 – 감정의 파열과 침묵 사이, 날카롭고도 절제된 구성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음악은 전형적인 뮤지컬 넘버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하진 않다. 대신 감정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선율과 구조로 관객의 내면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음악감독의 선택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고조시키기보다는, 그 감정을 ‘조금씩 깨뜨려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그나시오가 처음으로 자신 안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넘버는 짧지만 강렬하고, 이후 이어지는 고요한 솔로곡에서는 마치 감정의 잔해를 천천히 주워 담는 느낌이 들었다. 극 후반부 카를로스와 이그나시오가 충돌하는 장면에서의 듀엣 넘버는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논리를 가진 두 사람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노래로 부딪히는 구조는 뮤지컬만의 강점을 잘 살린 장면이었다. 특히 음악이 감정선을 과잉으로 몰아가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절제되고 계산된 선율로 흐른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감정은 더 깊게 파고들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몇몇 멜로디는 입 안에서 맴돌았고, 그것은 곡이 가진 정서적 농도 때문이었다.

배우들의 연기 – 감각으로 감정을 전하는 섬세한 집중력

내가 본 회차에서 이그나시오를 연기한 배우는 강렬하면서도 세심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이 인물이 단지 반항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주한 상태에서 불안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과정에 있다고 보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무대 위에서 시선을 잃은 듯하지만, 오히려 더 강한 에너지를 발산했고, 특히 독백을 할 때나 무대 중앙에 서 있을 때 그 집중력은 공연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카를로스 역의 배우는 정반대의 에너지로 극을 이끌었다. 이그나시오가 내면의 불꽃이라면, 카를로스는 외면의 질서다. 차분하고 절제된 표현 속에서도 흔들리는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내는 그의 연기는 작품의 균형을 잡아주는 핵심 축이었다. 조연 배우들도 각자의 캐릭터를 깊이 있게 해석해내며, 학교라는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현실감을 부여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을 표현하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진심 어린 표현으로 인물을 만들어갔다는 점에서 배우들 모두 높은 수준의 이해와 훈련이 느껴졌다.

개인적인 여운 – 진짜 어둠은 무엇이며, 진짜 빛은 어디에 있는가

공연을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건 하나의 질문이었다. ‘과연 우리가 보는 것만이 진짜일까?’ 이그나시오는 세상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어둠을 거부하려 했고, 카를로스는 그 어둠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버텨온 방식에 대한 존중이 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나는 공연을 보면서, 우리가 평소 너무 쉽게 단정 지어온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눈을 감고 보는 세상과, 눈을 뜨고도 외면하는 세상. 어느 쪽이 더 온전한 시선일까.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시각적 자극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오히려 감각을 내려놓고 자신 안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무겁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고, 어둡지만 그 안에 분명한 희망의 불꽃이 살아 있는 공연. 나는 이 작품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마치며 – 감각의 전복, 시선의 전환을 이끄는 묵직한 창작 뮤지컬

뮤지컬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는 시각장애라는 소재를 넘어서,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어둠’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불꽃 같은 의지를 이야기한다. 화려한 장치 없이도 깊은 울림을 전하고, 인물의 감정을 무겁게 끌고 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가는 구조는 창작 뮤지컬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상은 정말 전부인가요?”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공연을 관람할 가치는 충분하다. 관객으로서 나는 그 질문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