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무대화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워낙 완성도 높고 환상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기에, 그것을 현실의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SPIRITED AWAY〉 오리지널 투어 공연을 관람한 후, 그 의문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이 공연은 단순한 실사화가 아니라, 무대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상상력으로 지브리의 세계를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나는 공연을 보는 내내 어린 시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서늘한 감정이 뒤섞인 그 세계에 또 한 번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대 연출 –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일본 특유의 정교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무대화가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본 공연계 특유의 정교한 연출과 무대 기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오리지널 투어는 ‘2.5차원 무대’라 불리는 일본의 실사 연극 연출 방식이 극대화된 예였다.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무대 장치와 배우의 동선을 정교하게 설계하여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예를 들어 하쿠가 용으로 변하는 장면이나, 무얼 먹고 돼지로 변하는 부모님, 하늘을 나는 기차와 같은 장면들은 전통적인 무대 전환과 조명, 인형극 기술을 활용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형태로 표현되었다. 특히 가오나시의 등장은 공연 내내 가장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인형극 배우들이 조종하는 거대한 가오나시의 모습은 영화보다도 더 실감났고, 움직임과 소리의 타이밍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져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무대 세트 자체는 단순한 듯하지만, 조명과 그림자 효과, 무대 전환의 리듬이 극 전체의 몰입도를 크게 높였다. 여백이 있는 무대는 관객의 상상을 끌어들이는 캔버스 역할을 했고, 나는 그 속에서 영화보다도 더 개인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배우와 연기 – 실사화를 넘어선 캐릭터 구현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배우들이 단순히 캐릭터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그 역할 자체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는 것이다. 특히 센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무대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었다. 처음에는 겁 많고 순응적인 소녀였지만, 점차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과 마주하는 과정이 배우의 표정, 동작, 목소리 톤을 통해 섬세하게 전달되었다. ‘이게 연극이 아니라 실제 센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감정이 들 정도였다. 하쿠, 유바바, 린 같은 주요 캐릭터들도 각각의 개성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특히 유바바는 의상과 메이크업, 배우의 발성, 제스처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애니메이션 속 과장된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무대 위에서 더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한 것이 좋았다. 린과 하쿠의 감정선도 과하지 않게 표현되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인형극으로 표현된 캐릭터들과 실사 배우들 간의 호흡도 매우 자연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따라 했다’는 느낌보다는, 그 세계를 배우들이 현실로 끌어온 듯한 생생함이 공연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음악과 사운드 – 원작 감성의 힘을 극대화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늘 그러하듯, 음악은 이 공연에서도 감정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 히사이시의 오리지널 음악은 공연 내내 감정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었고, 특히 무대에서 직접 연주되거나 어쿠스틱 편곡으로 재해석된 부분은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익숙한 테마가 흐르는 순간마다 관객석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나 역시도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감정이 북받치는 순간이 많았다. 실제로 나는 이 공연에서 몇 번 울컥했다. 감동적인 장면이 아니라, 단지 음악과 장면이 맞닿는 그 순간, 어린 시절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다. 음향도 매우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어, 물이 흐르는 소리,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신들의 숨소리 같은 배경음 하나하나가 장면의 생동감을 더했다. 공연장이 완전히 어둠 속에 잠긴 상태에서 울려 퍼지는 낮은 음향은 신비롭고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이것이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감각의 경험을 만들어냈다.
감정의 선 – 어린 시절을 다시 마주하다
이 공연은 단순히 원작을 '다시 본다'는 차원을 넘어, 그 안에서 나 자신의 과거 감정과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겉으로 보기엔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성장과 이별, 기억과 잊힘, 이름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이 공연을 보면서, 어릴 적 나도 센처럼 낯선 환경에 휘말리고, 그 속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름을 잃고도 자기 자신을 잊지 않으려 했던 센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의 은유처럼 다가왔고, 그 메시지가 무대에서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으로 표현될 때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센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마음이 찡해지는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그 장면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감정의 회복처럼 느껴졌다.
무대 위로 옮겨온 지브리의 감성, 그 이상을 보여준 공연
〈SPIRITED AWAY〉 오리지널 투어는 단순한 애니메이션 실사화 공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이라는 2차원의 세계를 무대라는 3차원 공간으로 옮기되, 오히려 그 상상력을 확장하고 감정의 깊이를 더한 예술 작품이었다. 공연을 본 이후, 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잘 만든 무대극’이 아니라, 한 편의 ‘마법 같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무대 예술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한계를 넓혀준 공연이었고, 애니메이션을 사랑했던 이들뿐 아니라, 무대 예술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도 강력히 추천할 만한 공연이다. 공연장을 나서며 들었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지금 내가 본 건 꿈이었을까?” 현실과 환상, 기억과 감정이 뒤섞인 이 무대는, 어쩌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행방불명’이자 ‘귀환’이었는지도 모른다.